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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이야기6

연주하다가 틀리면 어떡하죠? "연주하다가 틀리면 어떡하죠?" "무서워서 연주를 못하겠어요." 독일 베를린 유학초기. 저는 심각하게 연주를 못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시작해서 연주가 끝나고 내려올 때까지 무얼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긴장했고, 떨었고, 망쳤었습니다. 나름 스스로 꽤 잘한다고 생각하고 유학을 떠났지만 클래식의 본토에서 대가들 앞에서 홀딱 벗겨진 기분이 들었고 음정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제대로 잘 못하는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몸은 굳고, 손은 떨리고, 머리는 하얗고, 정신은 유체이탈 하기 시작한거죠. 유학생활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던 그 현상(?)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온 같은 악기를 하는 외국 친구가 있었습니다. 담당 교수 클래스 발표(작은.. 2021. 6. 15.
왜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 "왜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 "어떤 원리로 그게 좋은 방법인거죠?" 항상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소릴 들었고, 대부분이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잘 몰랐던 걸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독일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클래식의 본토에 가서 속시원하게 알아보고 싶어서요.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고생끝에 학교를 들어갔고, 앞서 거론한 이유로 학교의 이론 수업에서 너무나 희열을 느꼈습니다. 부족한 어학능력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너무 신이 났습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필기를 했고, 필요에 따라 슥삭슥삭 그림으로 메모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들이 수업중 내 노트를 보시곤 한국에 가서 책으로 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학기말 시험을 쳤고, 글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은 그림으로 그리기까지 했습.. 2021. 6. 4.
즉흥연주 한번 해보실래요? "즉흥연주 한번 해보실래요?" "예? 그건 재즈에서나 하는거 아닌가요?" 독일에 유학을 가서 2번의 입시 실패를 맛보고 (한번은 미친듯이 떨어서 불합격, 또 한번은 두려워서 포기) 마지막이라 생각한 3번째 입시시즌. 당황스럽게도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만 독특한 시험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 전 학기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제가 시험을 보던 이 학기에만 생겼다 사라진 시험. 즉.흥.연.주. 재즈에서나 한다던 그 즉흥연주를 클래식 전공자에게 해보라니요. 그것도 입시 시험에서?! 정말 상상도 못했었고, 그 당시 꽤 많은 응시자들이 그 시험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클래식 전공자이지 재즈 뮤지션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시험은 거부하겠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인 외국 학생들은 자기소신이 있었고, .. 2021. 6. 1.
내가 악기연주를 제법 하는줄 알았다 독일 유학을 갈 때만 해도 내가 악기연주를 제법 하는줄 알았다. 착각에 빠져 그곳에 가보니 별세상이더라. 내가 너무 좁은 우물안에만 살았었고, 갑자기 너무 넓은 세상으로 나와 버린거다. 그곳에서 마주친 모든 공연장과 연주자가 거대하게 보였고, 나는 피부까지 투명해져 온몸 구석구석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만큼 자신감은 사라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악기를 잡을 수 없었고, 밤마다 (가슴으로) 울었다. 너무 두려웠고 막막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개월간 그렇게 암흑속에서 헤매다보니 더 이상 잃을게 없었다. 멋지고 화려한 곡 연습을 멈췄다. 악기 잡는 것부터, 소리 내는 것, 음정 듣는것.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루에 눈뜨고 눈감기전까지, 식사와 화장실 외에는 악기만 잡고 있.. 2021. 5. 30.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잘하니까, 무조건 배우자'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잘하니까, 무조건 배우자' '그것도 잘하니까 이것도 당연히 잘할거야. 그냥 따라하자.' 저는 독일 베를린에서 5년 정도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외로움과 즐거움, 고통과 깨달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 그 곳에서의 5년은 정말 제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저는 한국에서 온 젠틀한 남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의 정서와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구라고나 할까요?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줘, 한번 더 말해줘. 더 쉽게 말해줘." "이 부분을 꼭 이렇게 연주해야 돼? 이렇게 하는건 어때?" "내 생각은 좀 달라.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2020. 12. 30.
스파시바~ 빼쩨르부르크!! "우와~ 어떻게 이런 악기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지?!" "미련하게 악보에 있는 그대로 똑같이 연주를 하라고?" 유학생활 5년 동안 학기 중, 방학 관계없이 행복하게 즐겼습니다. 골목골목을 헤매고 걸어다니며 유럽을 만끽하고, 재미난 공연과 전시 등도 찾아서 보러 다니고, 레코드샵에서 맘껏 듣고 싶은 음반을 듣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다보니 유학생활 4년이 되는 때 딱 한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 5년간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행이었던거죠. 귀국하기 전 한국에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재미난 연주도 기획해서 하고, 또 러시아에서 마스터클래스와 연주도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가 본 러시아는, 살을 칼로 베는듯, 뼈가 욱씬욱씬 할 만큼 추운 나라였고, 악보에 있는 .. 2020. 12. 29.